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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어머님 아이들에게 이렇게 훈육하지 마세요

노라죠 세일즈맨 2024. 6. 2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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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어머니의 아들로서 훈육받고 중년이 된 현재 느끼는 것 

 기본적인 올바름 정직, 헌신, 인간애, 존중 등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사고와 정신상태를 가르치는 현존하는 유일한 조직은 종교단체이다. 학교나 군대 심지어 가정까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아이들을 훈육하지 못한다. 생각한다. 

 따라서 기독교를 나쁘다라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몇가지만 내가 느낀 것을 글로 남기고 싶을 뿐이다. 

특히 이부분 이다. 어려운 문제를 직면할 때 그 해결의 방법을 기도로 강요하면서 하나님이 해결하실 꺼야라는 주입이다. 실제로 어려서부터 이런 말을 듣다 보니 자존감이 낮은 나로서는 이 주입된 솔루션을 맹신하며 살아가야 하는 정석이라 받아들였다. 그래서 모든 문제에 있어 직면서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 어떤 수준이며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하는지의 고민보다는 그저 엎드려 기도부터 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이건 나의 성장을 위해 주신 고난이니 하나님이 동행하시니 이겨 낼 수 있을 거라는 위로뿐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결과는 주어졌지만 그 결과는 만족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의 주체인 난 없는 것이다. 결국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참고 인내하고 받아드리는 성향이 커지게 된다. 

 가정형편으로 인해 사관학교를 가야 했고 적성에 맞지 않는 군생활을 하는 순간에도 여실히 들어 났던 상황들이 있다. 소대장 시절 중대장은 아침에 인사를 욕으로 시작해서 일일 결산까지 욕으로 마무리 하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근데 선임 소대장인 내가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받아 드렸고 중대는 당연하다는 듯 그 분위기에 길드려져 가는 상황이었다. 

하루하루가 힘들었고 괴롭기 그지없었다. 근데 이 문제를 나와는 다를게 해결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와 그 소대장의 문제 해결 방식을 비교하기에 앞서 그 소대장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우선 타 중대에서 넘어왔다는 거 그래서 우리 중대의 분위기를 몰랐다는 것 그리고 항상 밝고 주도적이며 긍정적이고 책을 많이 읽었으며 외모가 외소하였지만 항상 당당했고 부대원들에게 칭찬을 많이 했고 밝게 웃어주는 나이가 나보다 많은 소대장이었다. 

여전히 폭언을 하는 중대장은 그날도 누가 옆에 있던 없던 훈련지에서 욕을 시작했고 난 늘 하던되로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참고 기도 할 뿐이었지만 그 소대장을 달랐다 중대장에게 욕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주장했고 우리가 무엇을 잘 못했는지 이야기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중대장의 폭언에 대해서 잘못된 부분 아니냐며 주장했고 선임 소대장인 나에게 왜 가만히 있냐며 화를 냈다.  그것도 중대원 전원이 있는 자리에서였다. 

그 상황도 너무나 충격이었지만 그 결과는 나에게 더욱 큰 충격이었다. 중대장이 사과하며 폭언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나에게 찾아와서도 그간의 자신의 잘못을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이이야기를 읽고 이렇게 이야기하실 거다.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통해 그 소대장을 움직여 일하신 거라고...  과연 그것이 정답일까? 나에게 용기를 주어 직접 그 문제를 그 소대장처럼 또는 더 좋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었을까? 왜 하나님은 기도한 나에게 용기를 주어 주체적으로 해결하게 하지 않았을까?

 이 과정을 통해 나에게 남은 것은 무얼까? 

욕은 멈추었지만 여전히 난 그대로 였다. 어떠한 성장도 없었다. 아니다. 욕을 먹거나 부당한 상황에도 참는 힘만 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 일했다는 믿음이 커져 현실에서 직면하는 문제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누군가가 해결할 거라는 잘못된 결과 값이 경험으로 남아 굳어지며 내가 해보려는 생각은 나의 문제 해결 프로세스에서 지워지게 되었다. 

 하나님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난 결국 내가 성장해야 하는 모든 기회들 속에서 도망치고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내 인생에 대해서 책임감이 없어지고 점점 의존적인 성향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굳어져 얻드려 기도하고 교회를 맹신하며 더욱더 교회를 찾고 하나님 없이는 무엇하나 결정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고 그렇게 되어 버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난 이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의 노력 나의 행위 나의 움직임이 빠져 버리면 결국 난 아직까지 그 문제를 풀지 못한 자 즉 성숙이 멈춰버린 몸은 커지고 나이를 먹을지언정 난 그냥 여름성경학교 때의 미숙한 미성년자와 다름없다. 

신앙을 버리라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나가지 말라는 것도 아닌다. 먼저는 아이들이 올바르게 주변사람들과 어울릴 수 예절을 가르쳐야 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문제를 너무 신앙적으로 접근하여 해결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아이도 성장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밥을 떠먹여 주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 하며 기도하고 구해야지 나도 스스로 인정받으며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리고 기도한다고 다 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신앙의 열정은 좋은 거지만 아이들에게 잘못된 신앙 강요와 성장을 억압하는 적용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도 못하는 바보로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끝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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